※김연수님 거듭나기에서 퍼왔습니다.
여러분, <죽이고 버림>이란 참으로 똑바르고 훌륭한 공부법입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은 진짜 제대로 죽이고 버리는 법을 모르십니다. 진짜 제대로 죽이고 버리는 법이란 뭐냐?
그것은 생각으로 죽이고 버리고 무엇을 폭파하고 용광로에 녹이고 이런 것이 아닙니다. 이런 것들은 수행의 아주 초창기에 아상과 에고로 똘똘 뭉친 사람들에게나 잠시 하는 것입니다. 진짜 제대로 죽이고 버린다는 것은 그렇게 죽이고 버려 깨달음이라는 무언가를 얻겠다는 것, <바로 그 생각> 자체가 욕심이요, 번뇌망상임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번뇌망상을 버리고 놓아버리는 것입니다. 이미 부처가 금강경에서 <진정한 법이란 얻을 것도 없고 버릴 것도 없다> 하지 않습니까? 석가께서 아난에게 <내가 법이란 것을 얻은 바가 있느냐?> 하고 반문하지 않으셨습니까? 진리는 이처럼 모든것(나, 진리, 스승, 법, 구도심)을 다 버리는 것입니다. 이 말은 깨달음이란 <생각>으로는 번뇌만 지을 뿐 실제로는 아무 것도 얻을 수가 없으며, 진리의 그 자리는 생각이 끊어지고 내려 놓아진 생각 이전의 본래의 자리란 것입니다.
진리에 대한 제 아무리 훌륭한 <생각>이나 <수행 방법>일지라도 그것은 진리 입장에서 보면 다 <생각>이고 <有爲>라서 일체가 다 번뇌망상일 뿐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내가 구원을 얻겠다는 <생각>으로 어떤 사람들은 평생을 종교에 매여 지내며, 내가 깨달음을 얻겠다는 생각 하나에 매여 평생을 남의 노예가 되어 헛된 형상에 머리를 조아리며 돈과 몸의 수고를 갖다 바치는 것입니다. 참, 머리가 나쁘면 평생 몸이 고생한다는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습니다.
진리란 말이 다만 <진리>일 뿐, 진짜로는 이것만이 진리다랄 게 없습니다. 아니 없다 해도 틀리고 있다 해도 틀립니다. 왜냐하면 참 진리란 있고 없고, 얻고 잃고 이런 분별망상심(양변에 떨어진 생각) 가지고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체의 생각을 넘어서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애꿎은 내 몸이나 생각을 그만 죽이고 버리십시오. 그리고 다만 할일은 모든 생각을 조용히 내려 놓는 것입니다. 어디로 갈 바도 없으며 어디에 머무를 바도 없습니다. 전체가 하나요, 한 마음이요, 나이며 너이며 일체입니다.
그 속에서 한 생각이 일어나 자꾸 이런 저런 분별망상을 짓는 것입니다. 그러니 공부 찾아 어디로 떠난다든지 하는 것이 일체 몽땅 헛짓이라 이 말입니다. 그 생각을 내려 놓는 것이 참으로 자신을 죽이고 버리는 것입니다. <죽이고 버림>에 매이고 걸려들어 그것을 스스로 죽이고 버리지 못하니 계속해서 다람쥐 쳇바퀴 돌리기를 하지만 그 실상을 눈치채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누가 알려줘야 하는데 아무도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러니 본인만 수고로울 수밖에요. 진리는 <있는 그대로>가 진리입니다. 아니, <있는.... >이라 할 때 이미 벌써 그것도 분별망상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생각만 시작하면 이미 개구즉착이라!
일체가 다 마음인데, 일체가 다 위대한 우주 한 생명의 에너지 속 움직임인데 뭐가 따로 있고 말고입니까? 다 우리가 분별하는 것일 따름입니다.
여러분, <죽이고 버림>이란 참으로 똑바르고 훌륭한 공부법입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은 진짜 제대로 죽이고 버리는 법을 모르십니다. 진짜 제대로 죽이고 버리는 법이란 뭐냐?
그것은 생각으로 죽이고 버리고 무엇을 폭파하고 용광로에 녹이고 이런 것이 아닙니다. 이런 것들은 수행의 아주 초창기에 아상과 에고로 똘똘 뭉친 사람들에게나 잠시 하는 것입니다. 진짜 제대로 죽이고 버린다는 것은 그렇게 죽이고 버려 깨달음이라는 무언가를 얻겠다는 것, <바로 그 생각> 자체가 욕심이요, 번뇌망상임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번뇌망상을 버리고 놓아버리는 것입니다. 이미 부처가 금강경에서 <진정한 법이란 얻을 것도 없고 버릴 것도 없다> 하지 않습니까? 석가께서 아난에게 <내가 법이란 것을 얻은 바가 있느냐?> 하고 반문하지 않으셨습니까? 진리는 이처럼 모든것(나, 진리, 스승, 법, 구도심)을 다 버리는 것입니다. 이 말은 깨달음이란 <생각>으로는 번뇌만 지을 뿐 실제로는 아무 것도 얻을 수가 없으며, 진리의 그 자리는 생각이 끊어지고 내려 놓아진 생각 이전의 본래의 자리란 것입니다.
진리에 대한 제 아무리 훌륭한 <생각>이나 <수행 방법>일지라도 그것은 진리 입장에서 보면 다 <생각>이고 <有爲>라서 일체가 다 번뇌망상일 뿐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내가 구원을 얻겠다는 <생각>으로 어떤 사람들은 평생을 종교에 매여 지내며, 내가 깨달음을 얻겠다는 생각 하나에 매여 평생을 남의 노예가 되어 헛된 형상에 머리를 조아리며 돈과 몸의 수고를 갖다 바치는 것입니다. 참, 머리가 나쁘면 평생 몸이 고생한다는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습니다.
진리란 말이 다만 <진리>일 뿐, 진짜로는 이것만이 진리다랄 게 없습니다. 아니 없다 해도 틀리고 있다 해도 틀립니다. 왜냐하면 참 진리란 있고 없고, 얻고 잃고 이런 분별망상심(양변에 떨어진 생각) 가지고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체의 생각을 넘어서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애꿎은 내 몸이나 생각을 그만 죽이고 버리십시오. 그리고 다만 할일은 모든 생각을 조용히 내려 놓는 것입니다. 어디로 갈 바도 없으며 어디에 머무를 바도 없습니다. 전체가 하나요, 한 마음이요, 나이며 너이며 일체입니다.
그 속에서 한 생각이 일어나 자꾸 이런 저런 분별망상을 짓는 것입니다. 그러니 공부 찾아 어디로 떠난다든지 하는 것이 일체 몽땅 헛짓이라 이 말입니다. 그 생각을 내려 놓는 것이 참으로 자신을 죽이고 버리는 것입니다. <죽이고 버림>에 매이고 걸려들어 그것을 스스로 죽이고 버리지 못하니 계속해서 다람쥐 쳇바퀴 돌리기를 하지만 그 실상을 눈치채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누가 알려줘야 하는데 아무도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러니 본인만 수고로울 수밖에요. 진리는 <있는 그대로>가 진리입니다. 아니, <있는.... >이라 할 때 이미 벌써 그것도 분별망상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생각만 시작하면 이미 개구즉착이라!
일체가 다 마음인데, 일체가 다 위대한 우주 한 생명의 에너지 속 움직임인데 뭐가 따로 있고 말고입니까? 다 우리가 분별하는 것일 따름입니다.
Trackback 0 and
Comment 0







이올린에 북마크하기
이올린에 추천하기
Prev